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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서울

[11월의 관악산 산행] 서울대입구-연주암-연주대-연주암-과천향교(5시간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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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입구역(2호선 3번출구)에서 나와 관악산행 버스를 타고 서울대 정문에서 내렸다.

정문 우측으로 관악산공원이라고 쓴 현판이 크게 보이는데 산행은 거기서부터 시작한다.



관악산은 관악구, 금천구와 경기도 안양시, 과천시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전체면적은 1,922만㎡(약 582만평), 최고봉은 연주대(해발 629.1m)이며, 1968년 1월 15일 건설부고시 제34호로 지정된 도시자연공원이다.

관악산은 예로부터 경기금강 또는 소금강이라고 불리우기도 하였으며, 경기오악(개성 송악산, 가평 화악산, 파주 감악산, 포천 운악산, 서울의 관악산) 중의 하나이다.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한양을 에워싼 산중에서 남쪽의 뾰족한 관악산은 화덕을 가진 산으로 조선조 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 때 화기를 끄기 위해 경복궁 앞에 해태를 만들어 세우게한 불기운의 산이라고 하는 유래도 있다.

산의 형세는 비록 태산은 아니나 준령과 괴암이 중첩하여 장엄함을 갖추었고, 봄철에 무리지어 피는 철쭉꽃과 늦가을의 단풍이 장관을 이루고 있으며, 그 정기가 뛰어나 많은 효자, 효부와 충신, 열사를 배출한 명산으로 고려시대의 강감찬 장군과 조선시대의 신자하 선생이 그 대표적인 인물이라 하겠다.

관악산과 인접한 삼성산은 삼성(三聖)이라고 일컬어지는 원교, 의상, 윤필이 이 산중에서 일막, 이막, 삼막 등의 세 암자를 지어 수도하였다는데 일막, 이막은 임진왜란 때 타버리고 지금은 삼막만 남았는데 이것이 삼막사이다.

그 외에도 1,500여 봉우리와 구릉 곳곳에 사찰(관음사, 보덕사, 호암사, 성주암, 자운암, 약수암, 연주암 등)이 산재하고 있으며, 계절마다 변화무쌍한 아름다운 경치가 있고 관문을 비롯한 각종 편익시설과 등산로가 말끔히 정비되어 있어 수많은 서울시민이 즐겨찾는 휴식처로 그 쾌적함과 신선함은 가히 서울의 명소이다.


관악산 입구(서울대 정문옆)


첫번째 화장실


첫번째 갈림길


관악산의 단풍


연주대와 삼성산으로 가는 갈림길

연주대로 가려면 좌측으로 가야 지름길이다.

관악산은 초행이라 첫번째 갈림길에서 연주대로 가는 길을 놓쳤다.


두번째 갈림길에서는 연주대 방향인 좌측으로 올라갔다.


마지막 화장실


날씨가 흐려서 이렇게 파란하늘은 보기 힘들었다.


깔딱고개와 연주대로 가는 갈림길, 우측


돌무더기


깔딱고개 하단(연주대 0.5Km) 마의 구간인 깔딱고개를 알리는 표시판


관악산을 설명해 주는 안내판들


말로만 듣던 악명높은 깔딱고개를 올라왔다.

거리상 10분이지만 실상 30분 정도 걸렸던 것 같다.

관악산을 오르는 최단거리라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을 이용한다.


깔딱고개를 넘어오자 만나는 정상 근처이다.

기상대가 보이고 저 멀리 연주대도 보인다.

가파른 바위를 지나야 정상에 도착한다.

깔딱고개가 너무 힘들어서 정상은 포기했다.



과천향교쪽 방향으로 내려오니 연주암이 나온다.


효령대군 영정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81호 /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85-1

효령대군(1396-1486)은 태종과 원경황후 민씨의 둘째 아들로 세종의 형이다. 효성이 지극했으며 독서를 즐기고 활쏘기에 능하여 태종을 따라 사냥터에 다녔다고 한다. 가로 74cm 세로 90cm의 효령대군의 영정은 정면을 바라보며, 왕이 평상시에 쓰는 관인 익선관 형태의 황색관모를 쓰고 깃과 소매에 녹색의 선을 댄 홍포를 입고서 용과 봉황으로 장식된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의자와 발을 올려놓은 족좌대는 흔히 보기 어려운 독특한 형태로 비록 여러번 옮겨 그려 정확한 제작 연대를 알기 어려우나 원본의 형태를 전하고 있다. 얼굴은 정면을 보는 관계로 각 세부가 도식적이고 미숙하게 처리되었다. 하지만 오른손으로 물건을 잡고 있는 자세는 조선전기 초상화에서 보기드문 것으로 이 그림이 갖는 특이한 표현이다. 이 작품은 비록 여러번 모사된 그림이지만 조선 전기 초상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효령각 현판

연주암 전경


힘들어서 정상을 포기했는데 

연주암에서 정상으로 가는 쉬운 코스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관악산 정상과 연주대를 찍고 가기로 했다.



관악산 정상(해발 629m)

많은 사람들이 인증샷을 찍느라 줄서서 기다려야 찍을 수 있었다.


바위 꼭대기에 자리잡은 연주대


연주대

경기도 기념물 제20호 / 경기도 과천시 중앙동 산12-4

관악산의 기암 절벽 위에 석축을 쌓아 터를 마련하고 지은 이 암자는, 원래 신라 승려 의상대사가 신라 문무왕 17년(677)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관악사를 건립할 때 함께 건립한 것으로 의상대라 불렀다고 한다. 관악사와 의상대는 연주암과 연주대로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내력에 대해서 두 가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하나는 조선 개국 후 고려에 대한 연민을 간직한 사람들이 이곳에 들러 개성를 바라보며 고려의 충신·열사와 망해버린 왕조를 연모했다고 하여 연주대라 불렀다는 이야기고, 또 하나는 조선 태종의 첫 번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두 번째 왕자인 효령대군이 왕위 계승에서 멀어진 뒤 방랑하다가 이곳에 올라 왕위에 대한 미련과 동경의 심정을 담아 왕궁을 바라보았다 하여 연주대라 이름지었다는 이야기다. 두 이야기 모두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인데 이것은 연주대의 주변 경관이 워낙 절경인데다 한 눈에 멀리까지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여서 붙여진 전설로 생각된다. 현재의 건물은 세 평 남짓한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을 최근에 해체·복원한 것이다.


연주대 웅진전 현판


웅진전 내부전경


웅진전 입구의 소원등


정상에서 하산하기 위해 연주암으로 내려왔다. 

과천향교 방향은 연주암에서 우측 방향이다.

하산하는 길에 케이블카도 보이는데 일반인은 탈 수 없단다.



과천향교 방향으로 가던 중 멋진 뷰포인트가 보인다.

하산길은 온통 바위뿐이라 시야가 열린 곳이 많았다.



이정표가 많지 않지만 이 푯말을 보고서야 제대로 내려가고 있다고 안심했다.


하산하면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참 많이 왔구나 새삼 놀랐다.


관악산에서 마주한 생김새가 특이한 바위들


내려가는 길도 끝까지 안심할 수 없는 바위길이었다.

내려가도 계속 산 밖에 안보이고 하산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다. 

어두워지기 전에 내려갈 수 있을까 하고 잠깐 겁도 먹었다.

드디어 그렇게 보고 싶던 안내판이 나왔다.

이 표지만을 보면 다 내려온 것이다.

바로 아래 건물도 보인다.



내려와서 처음 마주한 구세군교회 건물이다.

내려와보니 흐려서 주변이 더욱 어둑어둑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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